“선생님의 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AI 시대의 동물병원

안녕하세요. 더베이스 동물피부과 원장 박진오입니다.
최근 세계적인 반려동물 학회 (Hill’s Global Symposium 2026, 힐스 글로벌 심포지엄) 에서
영국의 고양이 전문의인 엘리스 로버트슨(Elise Robertson) 박사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보호자 분들의 마음에 대해 깊이 깊이 공감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오늘 칼럼에서는 박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조금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동물병원과 소아과의 닮은 꼴”
사실 동물병원에서의 모든 소통과 의사결정은,
보호자 분과 수의사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수의학의 구조는 의학 중에서 ‘소아과 의학(Paediatric medicine)’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아픈 아이가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스스로 말할 수 없고, 수술에 동의할 수 없듯이,
우리의 귀여운 동물 환자들도 스스로를 대변하거나 아픔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아과의 부모님과 동물병원의 보호자 분들은
‘환자를 대신해 모든 도덕적, 감정적 결정의 무게를 홀로 짊어져야 하는’
동일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보호자 분들이 진료실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슬픔은 깊은 애착 관계에서 오는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감정입니다.
그렇기에 보호자 분들은 단순히 의학적 지식을 가진 전문가를 넘어,
이 무거운 결정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짊어질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간절히 찾게 됩니다.
“수의사인 나조차, 내 고양이 앞에서는 이성을 잃었습니다.”
엘리스 로버트슨 박사님에게는 ‘에릭’ 이라는 사랑하는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에릭은 아침마다 옆집 문을 두드려 이웃집 꼬마와 인사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으며 등교 배웅까지 해줄 정도로 이웃과 유대감이 깊은 고양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릭이 림프종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됩니다.
항암제와 스테로이드 투약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얼마 후 이웃으로부터 ‘에릭이 요즘 아침에 찾아오지 않는다.’ 라는 문자를 받게 됩니다.
불길한 마음에 나가보니 에릭은 마당 한구석에서 힘없이 웅크려 누워있었습니다.
로버트슨 박사는 세계적인 고양이 전문가였지만, 막상 자신의 고양이가 무너지자 너무나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그 어떤 이성적인 판단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박사님은 울먹이며 30년 지기 동료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횡설수설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경험 많은 동료 수의사는 패닉에 빠진 그녀에게 약을 끊고 지켜보거나, 혹은 투약을 유지하며 행동 변화를 관찰하는 방법 등 ‘수의학적 팩트’를 차분히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성을 조금 되찾은 그녀는 약을 끊기로 결정하였고, 가슴 아프지만 마음 속으로 깊은 서약(vow)을 하나 세웠습니다.
에릭이 음식을 먹지 않는 순간이 오면, 그때가 바로 아이를 편안하게 보내줄 선(line)이다.
다행히 약을 끊은 에릭은 예전처럼 이웃 고양이와 투닥거리며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3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더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이웃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에릭이 무기력하고 뒷다리를 비틀거리며, 밥을 전혀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버트슨 선생님이 곧장 집으로 차를 몰아 돌아왔을 때,
에릭은 이미 심한 비틀거림과 둔감 반응을 보이고 있었고, 체내 독소가 쌓여 요독증 냄새를 풍기며 음식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이웃들은 고양이 전문가인 그녀를 바라보며,
수의사로서 어떤 마법 같은 해결책이나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대하는 눈빛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몇 년 전 스스로 고백했던 서약만이 맴돌았습니다.
“에릭이 밥을 먹지 않을 때, 거기가 바로 멈춰야 할 선이야”
그 비극적인 순간, 로버트슨 선생님의 지식(IQ)은 잘못된 방향으로 헤매고 있었고,
감정(EQ)은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습니다. 오직 그 서약을 지키겠다는 마음(CQ)만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30년 지기 동료 수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료 수의사가 집 문을 열고 들어와 수의사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넘겨받았을 때야,
박사님은 비로소 수의사라는 무거운 가면을 벗어던지고
‘에릭의 가족’으로서 아이의 마지막을 지키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보호자가 진료실 안에서 진짜 갈망하는 것”
로버트슨 선생님은 동료 수의사가 도착하기 전까지,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여 스마트폰으로 AI에 마구마구 질문을 쏟아부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녀가 AI가 내놓은 답변을 단 한 줄도 읽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질문의 대답이 궁금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동료 수의사가 올 때까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그 ‘불안과 공포를 줄이기 위해’
붙잡을 심리적인 동아줄이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일화는 정보가 넘쳐나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인공지능 도구들이 임상적인 조언을 쉽게 제공하는 이 시대에 동물병원을 찾는 보호자의 본질적인 마음을 대변합니다.
보호자 분들이 밤새 인터넷과 AI를 검색하는 것은 지식을 얻고 싶어서가 아니라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불안을 가득 안고 동물병원 문을 열 때 보호자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차가운 정답이 아니라,
“내 아이의 결정을 함께 책임져주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의 대상”입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회는 말 한마디, 눈빛 하나, 정서적 유대감이 소통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고맥락 문화권’ 입니다.
“선생님 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는 질문은,
수의사의 똑똑한 지식(IQ)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슬픔을 헤아리는 감정(EQ), 그리고 그 가족의 상황을 이해하는 태도(CQ)가 결합했을 때 나오는 가장 깊은 신뢰의 신호입니다.
“신뢰는 결코 자동화 될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데이터는 흔해지고 기술은 범람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함께 책임지는 ‘진정한 신뢰(TRUST)’는 결코 자동화될 수 없으며,
진료실에서 가장 희소한 가치입니다.
AI가 발전하여 우리 수의사들을 반복적인 차트 작성과 데이터 분석에서 해방시켜 준다면,
그 대가로 얻은 귀한 시간은 보호자 분들의 불안한 눈을 한 번 더 맞춰 바라보고,
말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으로 채워져야 마땅합니다.
결국 미래의 진정한 수의학적 가치는,
‘파편화된 데이터를 모아 보호자가 신뢰할 수 있는 따뜻한 치유의 스토리로 위로를 건네는 수의사의 공감 능력에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